태풍 페이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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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태풍 페이 (1995년)는 1995년 7월 17일에 발생하여 7월 24일에 소멸한 태풍이다. 캐롤라인 제도 동부 해상에서 발생하여 괌 섬 서쪽을 지나 오키나와 부근 해상에서 동쪽으로 전향한 후, 한반도 남해안에 상륙하여 남부 지방에 강풍 피해를 입혔다. 이 태풍은 북위 30도 이상 고위도에서 강하게 발달하는 이례적인 특징을 보였으며, 남해안에 상륙할 당시 중심 기압 960hPa, 최대 풍속 35m/s의 강한 세력을 유지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47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하고, 920억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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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페이 (1995년) | |
---|---|
태풍 정보 | |
종류 | 열대 |
해역 | 북서태평양 |
태풍 이름 | 199503 페이 (FAYE) |
![]() | |
발생일 | 1995년 7월 17일 |
소멸일 | 1995년 7월 24일 |
최저 기압 | 950 |
10분 최대 풍속 | 80 |
10분 최대 풍속 (KMA) | 39 |
1분 최대 풍속 | 110 |
최대 크기 (직경) | 900 |
인명 피해 (사망·실종) | 47명 |
최대 강풍 반경 (KMA) | 450 |
2. 태풍의 진행
태풍 페이는 1995년 7월 13일 캐롤라인 제도 동부 해상에서 발생한 저기압성 순환이 점차 발달하면서 시작되었다. 7월 15일 괌 섬 서쪽 약 300km 부근을 통과한 후, JTWC에 의해 제5호 열대저기압으로 지정되었고, 7월 17일에는 제3호 태풍 '페이'로 명명되었다.
이후 태풍은 서북서쪽으로 이동하여 7월 21일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 남쪽 약 200km 해상에 도달했고, 7월 22일부터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태풍은 전향하면서 급격하게 발달하여 7월 23일에는 중심기압 950 hPa, 최대풍속 40 m/s에 이르는 강력한 태풍이 되었다.[1]
7월 23일 오후 4시경, 태풍 페이는 중심기압 960 hPa, 최대풍속 35 m/s의 세력으로 경상남도 남해도에 상륙했다. 당초 대한해협 통과 또는 일본 상륙 가능성도 제기되었으나, 북위 32도 부근에서 갑자기 진로를 북쪽으로 변경하여 한반도를 관통했다. 이후 급격히 약화되어 7월 24일 강원도 삼척 앞바다를 통해 동해상으로 빠져나갔고, 같은 날 오후 9시 동해 북부 먼바다에서 열대저압부로 약화되어 소멸했다.[2]
2. 1. 발생과 초기 경로
1995년 7월 13일, 캐롤라인 제도 동부 해상에서 형성된 저기압성 순환은 조금씩 형태를 갖추면서 북서진하여, 7월 15일 오후 늦게 괌 섬 서쪽 약 300 km 부근을 통과했다. 이것은 곧 JTWC 해석의 5번째 열대저기압으로 승격되었으며, 7월 17일 오후 9시에는 제3호 태풍으로 인정되어 "페이"로 이름 붙여졌다. 그 후 진행 방향을 서북서로 바꾼 태풍은 7월 21일 오전 9시경에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 남쪽 약 200 km 부근 해상까지 진출한 뒤, 7월 22일 오전부터는 점차 동쪽으로 전향을 시작했다. 전향 시의 세력은 중심기압 965 hPa / 최대풍속 30 m/s의 강도 "중", 크기는 직경 약 650 km 정도의 "중형"이었다.당초 이 태풍의 발생 초기 예상에서는 북동쪽에 위치한 시어의 영향을 받아 크게 발달하지 못하는 것으로 예측되고 있었는데, 태풍은 발생 후 4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강도 "중"까지 발달하는 데 그쳐, 이 예상은 어느 정도 들어맞는 듯했다.
2. 2. 발달과 전향
1995년 7월 13일, 캐롤라인 제도 동부 해상에서 형성된 저기압성 순환은 조금씩 형태를 갖추면서 북서진하여, 7월 15일 오후 늦게 즈음해서는 괌 섬 서쪽 약 300 km 부근을 통과했다. 이것은 곧 JTWC 해석의 5번째 열대저기압으로 승격되었으며, 7월 17일 오후 9시에는 제3호 태풍으로 인정되어 “페이”로 이름 붙여졌다.[1] 그 후 진행 방향을 서북서로 바꾼 태풍은 7월 21일 오전 9시경에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 남쪽 약 200 km 부근 해상까지 진출한 뒤, 7월 22일 오전부터는 점차 동쪽으로 전향을 시작했다. 전향 시의 세력은 중심기압 965 hPa / 최대풍속 30 m/s의 강도 “중”, 크기는 직경 약 650 km 정도의 “중형”이었다.[1]당초 이 태풍의 발생 초기 예상에서는 북동쪽에 위치한 시어의 영향을 받아 크게 발달하지 못하는 것으로 예측되고 있었는데, 태풍은 발생 후 4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강도 “중”까지 발달하는 데 그쳐, 이 예상은 어느 정도 들어맞는 듯했다. 하지만 태풍은 전향과 함께 갑작스런 발달을 시작했고, 7월 22일 오후 3시에 중심기압 955 hPa / 최대풍속 35 m/s의 강도 “강”으로 승격, 이어서 7월 23일 오전 3시에는 중심기압 950 hPa / 최대풍속 40 m/s (75 kt), JTWC의 해석으로 1분 평균 최대풍속 55 m/s (105 kt) 에 이르는 강력한 태풍이 되었다. 이러한 발달은 북위 27도가 넘는 상당히 높은 위도에서 이루어져, 더욱 예상 외의 것이었다.[1]
2. 3. 한반도 상륙과 소멸
7월 23일 오후 4시경, 태풍 페이는 중심기압 960 hPa / 최대풍속 35 m/s의 세력으로 남해도에 상륙했다.[2] 전향 후 진행 방향이 동쪽으로 꽤 꺾어져 한때 대한해협 통과 내지 일본 상륙의 가능성까지 점쳐졌지만, 북위 32도 부근에서 돌연 진로를 바꾸어 북쪽으로 나아가 그대로 한반도에 상륙했다.[2] 이후 급격히 쇠퇴하면서 30~40 km/h의 다소 빠른 속도로 한반도 남동부를 관통하여, 7월 24일 오전 2시경에는 중심기압 994 hPa / 최대풍속 20 m/s의 강도 "약"의 세력으로 크게 약해진 채 강원도 삼척 앞바다를 통해 동해상으로 빠져나갔다.[2] 같은 날 오후 9시에 동해 북부 먼바다에서 열대저압부로 약화되었으며, 일본 홋카이도 구시로시 북동쪽 약 20 km 지점에서 완전히 소멸했다.[2]2. 4. 중심기압 및 최대풍속의 경과
날짜 및 시간 | 중심기압 | 최대풍속 | 비고 |
---|---|---|---|
7월 17일 오후 9시 | 998 hPa | 18 m/s | 태풍 발생. |
7월 18일 오전 9시 | 994 hPa | 18 m/s | |
7월 18일 오후 9시 | 985 hPa | 23 m/s | |
7월 19일 오전 9시 | 980 hPa | 25 m/s | |
7월 19일 오후 9시 | 975 hPa | 30 m/s | |
7월 20일 오전 9시 | 975 hPa | 30 m/s | |
7월 20일 오후 9시 | 975 hPa | 30 m/s | |
7월 21일 오전 9시 | 970 hPa | 30 m/s | |
7월 21일 오후 9시 | 970 hPa | 30 m/s | JTWC 해석으로 최대풍속 55 m/s (105 kt). |
7월 22일 오전 9시 | 960 hPa | 35 m/s | |
7월 22일 오후 9시 | 955 hPa | 35 m/s | |
7월 23일 오전 3시 | 950 hPa | 40 m/s | |
7월 23일 오전 9시 | 950 hPa | 40 m/s | |
7월 23일 정오 | 955 hPa | 35 m/s | |
7월 23일 오후 3시 | 960 hPa | 35 m/s | 한반도 상륙 직전.JTWC 해석으로 최대풍속 50 m/s (95 kt). |
7월 23일 오후 4시 | 960 hPa | 35 m/s | 오후 4시경 남해도 상륙.여수에서 최저해면기압 970.2 hPa. |
7월 23일 오후 6시 | 975 hPa | 30 m/s | |
7월 23일 오후 9시 | 985 hPa | 25 m/s | |
7월 24일 자정 | 994 hPa | 20 m/s | |
7월 24일 오전 3시 | 994 hPa | 20 m/s | 오전 2시경 삼척 부근을 지나 동해상 진출. |
7월 24일 오후 9시 | 1002 hPa | - | 동해 북부 먼 바다에서 열대저압부로 약화. |
3. 특징
태풍 페이는 북위 30도가 넘는 고위도에서 최성기를 맞아 대부분의 태풍과는 다른 독특한 발달 과정을 보였다. 한반도 상륙 당시 강도 "강"으로, 1987년 태풍 셀마 이후 8년 만에 찾아온 강력한 태풍이었다. 중심 부근의 급격한 기압경도 காரணமாக 강풍을 동반했으나, 강수량은 평년보다 적어 전형적인 "바람에 의한 태풍"의 모습을 보였다.
3. 1. 이례적인 발달 과정
이 태풍은 특이하게도 북위 30도가 넘는 고위도에서 최전성기를 맞이했다.[1][2] 북위 15~25도 사이에서 최성기를 맞이한 뒤 점차 쇠약기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태풍과 구별되는 독특한 발달 과정을 밟았다. 위도가 높았던 만큼 최발달 시의 세력이 지속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쇠퇴가 시작된 지 한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한반도 남해안에 도달했기 때문에, 한반도에는 최성기에 가까운 세력으로 상륙했다. 1987년의 태풍 셀마 이래 약 8년 만에 찾아온 강도 “강”의 태풍으로서, 상륙 시의 세력 (중심기압 960 hPa / 최대풍속 35 m/s)은 역대 한반도 상륙 태풍 중 최상위에 속한다. 특히, JTWC의 해석으로는 최대풍속 50 m/s (95 kt)로 상륙한 것으로 되어 있어, 1959년의 사라와 2003년의 매미를 뒤잇는 강력 태풍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3. 2. 강풍 피해
태풍 페이는 강한 바람으로 인해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큰 피해를 가져왔다. 특히 태풍의 위험 반원에 위치한 지역에서 피해가 컸다. 통영 46.6 m/s, 부산 42.3 m/s, 여수 39.0 m/s 등 최대순간풍속이 관측되어 곳곳에서 종전의 풍속 기록을 경신했다.[1] 일본의 대마도나 규슈 서해안 일대에서도 최대순간풍속 40 m/s 이상의 바람이 불었다.[1] 이는 태풍 자체의 위력도 강했지만, 중심 부근의 기압경도가 급격한 태풍의 구조적인 특성이 바람의 힘을 배가시켰기 때문이다.[1]
그러나 이러한 강풍은 주로 태풍의 중심 부근 혹은 위험 반원에 해당했던 전라남도 동부 및 경상남도, 그 중에서도 해안가에 집중되었고, 그 외의 지역에서는 강한 바람이 불지 않았다.[1] 태풍 경로의 왼쪽, 즉 가항 반원의 경우는 태풍의 중심 부근과 위험 반원에서의 강력한 폭풍에 비해 훨씬 약했다. 게다가 태풍이 육지에 상륙하면서 급격히 쇠퇴하여 한반도 내륙을 진행할 때에는 이미 폭풍역(풍속 25 m/s 이상의 폭풍 범위)을 상실한 상태였다.[1]
이 때문에 남부 지방 해안가에서는 30~50 m/s의 기록적인 최대순간풍속이 관측되었지만, 태풍의 가항 반원에 해당했거나 한반도 내륙 깊숙이 위치한 제주도, 전라도 북서부, 충청도 등에서는 최대순간풍속 10~20 m/s 정도의 비교적 약한 바람이 불었다.[1]
3. 3. 강수량 특징
태풍 페이는 비에 있어서는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강수량은 태풍이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7월 23일 ~ 24일 동안 상륙 지점에 가까웠던 남해와 여수에서 각각 218.0 mm, 143.7 mm를 기록한 것을 포함해 남부 지방의 일부 지역에서 100 mm를 넘었을 뿐, 대부분의 지역에서 50 mm 내외에 머물렀다. 이는 과거 한반도에 내습한 태풍들이 쏟아부었던 강수량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태풍 페이는 전형적인 "바람에 의한 태풍"의 모습을 보였다.
4. 기록
태풍 페이로 인해 여수에서 970.2 hPa의 최저해면기압이 관측되었고, 남해에서 196.5mm의 일최다강수량이 기록되는 등 여러 기록이 관측되었다.
4. 1. 최대순간풍속
4. 2. 최대풍속
4. 3. 최저해면기압
4. 4. 일최다강수량
4. 5. 기간강수량
5. 피해
태풍 페이로 인해 사망·실종 47명, 이재민 4500여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6] 재산 피해는 9200억원이었다.(1995년 화폐가치 기준)[6]
1987년 태풍 셀마 이후 약 8년 만에 찾아온 강도 "강"의 태풍이었으나, 이에 대한 경각심 부족과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인명 피해가 잇따랐다. 폭풍 속에서 바닷가를 달리던 차가 파도에 휩쓸려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고,[3][4] 태풍 경보를 무시하고 항해를 계속한 씨프린스 호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5]
5. 1. 대응
기상청은 7월 23일 오전에 태풍 예보를 발령했다. 새벽에는 한반도 남해안에서 일본 규슈에 이르는 넓은 범위가 예보에 포함되어 진로가 유동적이었으나, 이후 한반도 상륙 가능성이 높은 진로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에 기상청은 오전 2시에 제주도와 남해 먼바다에 태풍 경보를, 부산 및 남해안 지역에 태풍 주의보를 발령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경보와 주의보를 점차 확대했다.[3]7월 23일 오전 3시, 태풍은 한반도 상륙 약 12시간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발달하여 중심기압 940 hPa / 최대풍속 45 m/s의 강도 “매우 강”으로 강화되었다. 이는 1959년 태풍 사라의 한반도 접근 시와 필적하는 세력이었다. 그러나 태풍은 한반도 상륙 직전에 세력이 약화되었고, 상륙 후에는 급격히 약화되어 우려했던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1987년 태풍 셀마 이후 약 8년 만에 찾아온 강도 “강”의 태풍에 대한 경각심 부족으로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인명 피해가 잇따랐다. 폭풍 속에서 바닷가를 달리던 차가 파도에 휩쓸려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고,[3][4] 태풍 경보를 무시하고 항해를 계속한 씨프린스 호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5]
5. 2. 피해 상황
인명 피해는 다음과 같다.[6]구분 | 내용 |
---|---|
사망·실종 | 47명 |
이재민 | 4500여 명 |
재산 피해는 9200억원이었다.(1995년 화폐가치 기준)[6]
6. 관련 통계
순위 | 태풍 번호 | 태풍 이름 | 상륙 시(직전) 중심 기압 | 상륙 지점 |
---|---|---|---|---|
1위 | 5914* | 사라 | 942 hPa | 경남 거제도 |
2위 | 0314 | 매미 | 950 hPa | 경남 고성군 부근 |
2위 | 2009 | 마이삭 | 950 hPa | 부산광역시 부근 |
4위 | 2010 | 하이선 | 955 hPa | 울산광역시 부근 |
4위 | 2211 | 힌남노 | 955 hPa | 부산광역시 부근 |
6위 | 0014 | 사오마이 | 959 hPa | 경남 고성군 부근 |
7위 | 0215 | 루사 | 960 hPa | 전남 고흥군 |
8위 | 9503 | 페이 | 960 hPa | 남해도 |
9위 | 1216 | 산바 | 965 hPa | 남해도 |
9위 | 8613 | 베라 | 965 hPa | 충남 보령시 부근 |
9위 | 5707 | 아그네스 | 965 hPa | 경남 사천시 부근 |
* JTWC 해석의 한반도 상륙 태풍. | ||||
통영에서의 실측치. |
순위 | 태풍 번호 | 태풍 이름 | 최대 순간 풍속 | 관측 연월일 | 관측 장소 |
---|---|---|---|---|---|
1위 | 0314 | 매미 | 60.0 m/s | 2003/9/12 | 제주 |
2위 | 0012 | 프라피룬 | 58.3 m/s | 2000/8/31 | 흑산도 |
3위 | 0215 | 루사 | 56.7 m/s | 2002/8/31 | 고산 |
4위 | 1618 | 차바 | 56.5 m/s | 2016/10/5 | 고산 |
5위 | 1913 | 링링 | 54.4 m/s | 2019/9/7 | 흑산도 |
6위 | 0711 | 나리 | 52.4 m/s | 2007/9/17 | 울릉도 |
7위 | 1215 | 볼라벤 | 51.8 m/s | 2012/8/28 | 완도 |
8위 | 9219 | 테드 | 51.0 m/s | 1992/9/25 | 울릉도 |
9위 | 2009 | 마이삭 | 49.2 m/s | 2020/9/3 | 고산 |
10위 | 8613 | 베라 | 49.0 m/s | 1986/8/28 | 울진 |
참조
[1]
문서
이는 정확히 25년 후 세력이 동등한 2020년 태풍 바비가 태풍 페이와 동일하게 북위 30도선에서, 그것도 SSHS 3등급으로 최전성기를 맞이하는 우연이 벌어진 바 있으나, 태풍 페이가 1995년에 발생한 태풍이다 보니 이런 사실은 의외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2]
문서
다만 순간풍속 자체는 페이의 통영 46.6, 바비의 흑산도 47.4(비공식 가거도 66.1)로 바비가 페이보다 근소하게 더 강했지만, 상륙 경로는 페이는 남해-영남 지방-동해, 바비는 남해-서해-북한 옹진반도로 큰 차이가 났기에 정확한 비교는 어려운 편이다.
[3]
뉴스
태풍 페이 피해
http://imnews.imbc.c[...]
MBC
[4]
뉴스
태풍 페이 피해 종합
http://srchdb1.chosu[...]
조선일보
1995-07-24
[5]
뉴스
씨프린스 호 침몰로 사상 최악의 기름 오염사태
http://imnews.imbc.c[...]
MBC
[6]
서적
피해 집계 기록은, 기상청의 『태풍 백서』에 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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